이 글은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암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GitLab 공동창업자 Sid Sijbrandij가 공개한 개인 기록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AI 시대에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암을 프로젝트처럼 다룬 창업자 썸네일
암을 프로젝트처럼 다룬 창업자 썸네일

AI가 암을 고쳤다는 영웅담이 아니라 접근 방식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누고 싶어 글을 씁니다. Sid Sijbrandij의 사례인데요, 그는 자신의 병을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다뤘습니다.

기록을 모으고,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전문가를 모으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다음 선택지를 병렬로 준비했습니다. AI는 그 과정에서 의사를 대신한 존재가 아니라,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고 더 나은 질문을 만들게 해준 동료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노정석 대표님이 영상에서 말한 “소프트웨어가 바이오를 바꾼다”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GitLab을 만든 사람의 방식

Sid Sijbrandij는 GitLab의 공동창업자입니다. GitLab은 개발자들이 코드를 관리하고 협업하는 DevSecOps 플랫폼 인데요, GitLab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radical transparency, 급진적 투명성입니다.

GitLab은 회사의 운영 방식과 문서를 공개적으로 관리해왔고,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핸드북을 통해 회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기록해왔습니다. 회사의 작동 방식을 문서와 버전 관리로 다루는 문화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GitLab 대표가 어느 날, 자기 몸에서 가장 원치 않는 정보를 받습니다.

암이었습니다.

Sid는 2022년 11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희귀한 골암인 osteosarcoma, 골육종이었습니다. 특히 45세의 건강한 성인에게는 드문 형태였고, 척추 쪽에 6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표준 치료를 따랐습니다.

수술로 암이 있는 척추 부위를 제거하고, 티타늄 구조물로 척추를 고정했습니다. 이후 고강도 항암치료, 정위체부방사선치료, 양성자 치료 등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는 몸을 크게 무너뜨렸고, 그는 수혈을 여러 차례 받아야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환자가 겪는 표준적인 치료의 길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2024년 말, 암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그는 중요한 분석과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말합니다. 기존 시스템이 가장 좋은 선택지를 찾아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Manager Mode”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암이 재발했고, 의사들은 표준 치료 옵션이 소진되었으며 그의 상황에 맞는 임상시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때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 가정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요.

Founder Mode는 병원 밖에서 의학을 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Sid가 말한 Founder Mode는 “의사를 믿지 말자”가 아닙니다. 반대로 그는 훨씬 더 많은 의사, 과학자, 연구자, 데이터 전문가를 모았습니다. 다만 기존 시스템이 순서대로 제시하는 선택지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치료를 하나의 R&D 프로젝트처럼 운영했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에 가까웠습니다.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진단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단일세포 RNA 시퀀싱, bulk RNA 시퀀싱, whole-genome sequencing, whole-exome sequencing, 조직 이미지, PET/CT, 혈액 검사 등 일반 진료에서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 고급 데이터를 여러 시점에서 모았습니다.

둘째, 치료 후보를 하나씩 기다리지 않고 병렬로 검토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A 치료를 해보고, 안 되면 B 치료를 검토하고, 다시 안 되면 C로 넘어갑니다. Sid의 팀은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조사하고, 어떤 치료가 실제로 가능한지, 어떤 규제 경로가 필요한지, 어떤 데이터가 더 필요한지를 동시에 움직였습니다.

셋째,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공개했습니다.

그는 osteosarc.com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자신의 암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여기에는 단일세포 RNA, bulk RNA, 고해상도 조직 이미지, PET/CT, 치료 타임라인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보고 새로운 표적이나 치료 가능성을 발견하면 연락해달라는 요청도 함께 남겼습니다.

회사 운영에서 쓰던 투명성과 문서화의 원칙을 자기 치료에도 가져온 것입니다.

출처: osteosarc.com. Sid가 공개한 골육종 데이터 사이트의 대표 이미지.
출처: osteosarc.com. Sid가 공개한 골육종 데이터 사이트의 대표 이미지.

AI는 어디에 있었을까

OpenAI Forum에서 그의 이야기를 공유했는데요, Sid는 ChatGPT를 활용해 스캔, 혈액 검사, 조직 샘플 결과를 추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흩어진 의료 데이터를 넣고, 변화의 패턴을 보고, 관련 논문과 가능성을 탐색하고, 의료진에게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한 개인적인 research and development loop를 만든 것입니다.

출처: OpenAI Forum. “From Terminal to Turnaround: How GitLab’s Co-Founder Leveraged ChatGPT in His Cancer Fight” 이벤트 포스터.
출처: OpenAI Forum. “From Terminal to Turnaround: How GitLab’s Co-Founder Leveraged ChatGPT in His Cancer Fight” 이벤트 포스터.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AI가 의학적 판단을 대신한 것이 아닙니다. AI가 종양을 직접 줄인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종양을 줄인 치료는 독일에서 받은 실험적 방사성 리간드 치료였습니다.

하지만 AI는 그가 더 빨리 이해하고, 더 잘 연결하고, 더 좋은 질문을 하게 만든 도구였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앞으로 정말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정답을 주는 기계”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 AI가 강력해지는 순간은 조금 다릅니다. 정답을 대신 내릴 때가 아니라, 복잡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줄 때입니다.

의학에서도, 사업에서도, 콘텐츠에서도 비슷합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져서 사람이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너무 흩어져 있어서 연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AI는 그 사이를 메우는 도구가 됩니다.

종양이 ‘소프트웨어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Sid의 치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FAP라는 표적이 발견되는 과정입니다.

Century of Bio의 정리에 따르면, Sid의 단일세포 데이터에서 암세포로 추정되는 클러스터가 KERA, LUM, EPYC, FAP 같은 섬유아세포 관련 마커를 과발현하고 있다는 관찰이 나왔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의 암이 단순히 “나쁜 덩어리”가 아니라 특정한 생물학적 패턴을 가진 시스템으로 읽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독일에서 FAP를 표적으로 하는 실험적 방사성 리간드 치료 가능성이 발견됩니다. 이 치료는 먼저 진단용 동위원소로 종양이 실제로 해당 표적에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이후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인 Lutetium-177을 이용해 종양 부위에 방사선을 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검사에서 종양이 “빛났고”, 그 결과는 치료를 진행할 근거가 되었습니다.

치료 후 종양은 수술 가능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후 수술과 함께 면역 반응도 다시 분석되었습니다. Sid의 암이 재발했을 때 종양 내부 면역세포 중 T세포 비율은 19%였는데, 방사성 리간드 치료, 체크포인트 억제제, 네오안티젠 펩타이드 백신, 종양용해 바이러스 등이 결합된 뒤에는 89%로 올라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의 매우 특수한 사례입니다.

돈, 네트워크, 시간, 지식 접근성, 규제 경로까지 모두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Sid가 억만장자 창업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우리도 AI로 암을 치료하자”로 받아들이면 위험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해지기 시작했을까요?

노정석 대표가 말한 ‘소프트웨어 = 바이오’

노정석 대표 영상에서 제게 남았던 문장은 “소프트웨어 사업자 관점에서 바이오 영역을 본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출처: EO PLUS 유튜브, 노정석 대표 인터뷰 영상 캡쳐. 영상에서 노 대표는 AI 시대에 바이오와 소프트웨어가 맞닿는 지점을 설명합니다.
출처: EO PLUS 유튜브, 노정석 대표 인터뷰 영상 캡쳐. 영상에서 노 대표는 AI 시대에 바이오와 소프트웨어가 맞닿는 지점을 설명합니다.

처음 들으면 조금 낯섭니다.

바이오는 병원, 연구실, 제약회사, 임상시험의 영역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소프트웨어는 코드, 데이터, 배포, 버전 관리, 자동화의 영역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Sid의 사례를 보면 둘 사이의 경계가 조금 흐려집니다.

몸에서 나온 데이터가 쌓입니다. 그 데이터가 분석됩니다. 특정 패턴이 발견됩니다. 그 패턴을 바탕으로 치료 후보가 정리됩니다. 치료 결과가 다시 데이터로 들어옵니다. 다음 가설이 만들어집니다.

이 구조는 꽤 소프트웨어적입니다.

코드를 고치고 배포하고 로그를 보고 다시 고치는 과정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사고방식은 닮아 있습니다. 상태를 관찰하고, 가설을 만들고, 실험하고, 결과를 기록하고, 다음 결정을 더 낫게 만드는 루프입니다.

AI가 들어오면 이 루프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논문, 검사 결과, 생물학적 개념, 치료 후보들이 이제는 대화 가능한 형태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물론 최종 판단은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 창업자와 실무자가 질문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히 올라갑니다.

저는 이것이 노정석 대표가 말한 변화의 핵심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AI가 전문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가 전문가와 대화할 수 있는 밀도를 바꾸는 것.

우리가 가져와야 할 것은 치료법이 아니라 운영 방식입니다

이 글을 쓰며 계속 조심스러웠습니다.

의료 이야기는 쉽게 과장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절박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Sid의 사례를 개인이 따라 할 치료법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의 관점에서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Sid가 한 일은 결국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문제를 남에게 완전히 맡기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데이터를 한곳에 모았습니다. 문제를 쪼개고, 전문가가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꿨습니다. 가능한 선택지를 병렬로 탐색했습니다. 결과를 기록하고, 다음 결정을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공개해 다른 사람들이 이어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은 꼭 암 치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인 대표의 사업에도, 작은 팀의 콘텐츠 운영에도, 고객 상담에도, 강의 기획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쓰기 시작할 때 “어떤 툴을 써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물론 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일의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남기고 있는지입니다. 회의, 고객 질문, 콘텐츠 성과, 실패한 제안서, 반복되는 문의, 내가 매번 헷갈리는 판단 기준이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AI가 단순 검색창이 아니라 나의 R&D 루프가 됩니다.

AI 시대의 격차는 ‘답을 아는 사람’보다 ‘질문을 조직하는 사람’에게서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Sid의 이야기를 보며 가장 크게 남은 것은 불안이 아니었습니다.

AI에 뒤처지면 어떻게 하지, 이 속도를 어떻게 따라가지, 이런 걱정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이 남았습니다.

나는 내 문제를 AI와 함께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있나?

이 질문은 꽤 실용적입니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는지. 그 기록이 다시 다음 실행에 연결되는지. 흩어진 자료를 모아 질문으로 바꿀 수 있는지. 전문가에게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AI를 정답을 말하는 자판기가 아니라 사고의 동료로 쓰고 있는지.

AI 시대에 중요한 능력은 모든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내 문제를 구조화하고,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좋은 질문을 만들고, 사람과 AI를 함께 움직이게 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Sid의 이야기는 아주 특수한 의료 사례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일과 삶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한 예고편처럼 보입니다.

AI는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잘 묻고, 더 잘 기록하고, 더 잘 연결하도록 도울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 차이가 앞으로 많은 일을 바꿀 거라고 생각합니다.